2.3. 독립 튀니지 정부의 언어 정책
식민 지배를 했던 프랑스에 독립했을 당시 튀니지의 국민들은 프랑스에 대해 호의적이었다. 튀니지 독립 운동을 전개했던 신 데스투르당은 온건적인 민족주의자였으며 유럽에 대한 동경심을 가진 이들이 많았다. 자연스럽게 이들에 의해 주도된 독립과 자주성 회복은 한계를 가질
수 밖에 없었다. 독립 이듬해인 1957년에 프랑스와의 외교 관계에서 다소 마찰이 있었지만, 기본적으로 독립 튀니지 정권은 친프랑스적 색채를 띠고 있었다.
독립 이후 튀니지에서는 아랍어화 운동이 전개되었는데 튀니지에서의 아랍어화는 프랑스 식민지 지배 기간동안 국가의 언어였던 프랑스어를 아랍어로 대체하고 교육 행정 언론과 대중매체의 언어로 발전시키려는 일련의 과정이었다. 아랍어화는 식민지배 국가로의 탈피 및 국가 정체성 확립을 위해 실시되었다. 아랍어화는 언어적인 문제를 넘어서 정치 사회 문화와 관련된 중요한 사항으로 보았다. 아랍어화 운동은 북아프리카 전역에서 전개되었는데 튀니지는 아랍 공동체 건설과 아랍 국가들간의 연대를 중요시했던 아랍주의보다 튀니지 민족주의를 강조했다.
독립 후 아랍어화를 강조했지만 대학교를 비롯해 중ㆍ고등 교육에서 프랑스어를 써 왔기 때문에 급작스럽게 바꿀 수 없었다. 초등 교육에서 프랑스어는 제 2언어로써의 입지를 가졌다. 1970년대에는 중ㆍ고등 교육에도 그 동안 사용했던 프랑스어를 아랍어로 대체하는 시도를 했다. 시도한 결과 지리, 철학등 인문학 분야에서는 아랍어를 사용했지만, 수학과 과학 분야 및 직업 학교에서는 프랑스어 중심의 교육이 시행되었다. 중등 교육에서는 분야에 따라 언어를 달리하는 상황에 놓이게 되었다. 마찬가지로 대학 교육도 분야에 따라 인문학은 아랍어, 수학과 과학 분야는 프랑스어를 통한 교육이 진행되었다. 교육 환경에서 볼 수 있듯이 독립 이후에도 완전한 아랍어화는 불가능했다. 이 측면에서는 프랑스어를 배운 사회 엘리트들이 권력 유지를 위한 수단으로 프랑스어 사용을 했던 부분도 무시할 수 없었다. 아랍어화는 추진할 당시 충분한 시간을 가지고 언어적 사회적 합의를 마련했던 것이 아닌 성급한 진행으로 인해 가지는 제도적인 허점을 많이 가지고 있었다. 제도적인 허점은 여러 가지가 있다.
첫 번째로 튀니지는 공식 언어를 한 개 언어로 사회적 합의를 이루지 못했다. 독립 이후 튀니지에서는 표준 아랍어, 튀니지 구어체 아랍어, 프랑스어와 타마지그어가 혼용되어 사용되고 있었다. 이는 다른 신생 아랍 독립국도 마찬가지로 한 개로 공식적 합의를 이끌어내지 못했다.
둘째는 과학과 새로운 기술 용어의 부족과 이에 대한 대응의 부재였다. 13세기 이후로 정체되 있던 표준 아랍어로는 프랑스가 새로 들여온 과학과 그 외의 분야의 용어들을 대체할 만한 여력이 없었고 독립 튀니지에서는 과학과 새로운 분야에서는 프랑스어를 계속 사용할 수 밖에 없었다.
셋째는 아랍어 학술원의 부족이었다. 프랑스가 들여온 과학 분야와 그 외의 분야에서 사용되는 용어들을 아랍어로 대체하려는 노력이 있었지만 시시각각 변하는 사회의 변화의 흐름에 맞추어 대체하기에는 역부족이었다. 새로운 용어를 대체하기 위한 기관 The Permanent Bureau of Arabization(1961)과 The Maghrebi Consulative Committee(1966) 등은 설립 되었지만 급속하게 대량으로 유입되는 서양의 과학 기술 용어에 대응할 만한 능력과 기반도 구축되어 있진 못했다. 그 결과로 새로운 외래어들이 튀니지 전역에 퍼지고 난 후 학술원이 부리나케 대응했지만 이미 외래어를 사용하고 있는 상황에서 혼란만 가중시킬 뿐이었다.
이처럼 튀니지는 아랍어화를 추진함에 있어서 사회적, 언어적 인프라를 구축하지 못했고 이를 시행하는 정치인들조차 친프랑스 엘리트들이었기 때문에 아랍어화를 진행함에 있어서 한계를 가졌다. 대통령이었던 부르기바조차도 아랍어화를 진행함에 있어서 종교와 정치를 분리하자는 주장을 펼치며 표준 아랍어를 중심으로 하는 국가 근대화 정책보다 프랑스 지향적인 정치를 전개했다.
3. 결 론
지금도 공용어는 아랍어이지만 프랑스어가 아랍어보다 일상적으로 쓰이기도 하고 젊은 도시 사람들은 불어로 대화하기도 한다. 튀니지 사회에는 프랑스어가 표준 아랍어보다 우위에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도 많다. 이러한 상황은 프랑스가 오랜 기간동안 식민 지배를 하며 언어 동화정책을 전개했기 때문에 발생했고 독립 튀니지가 추진했던 아랍어화가 실제적으로 튀니지에 스며들지 못해 발생했다.
프랑스어가 모국의 공용어인 표준 아랍어보다 더욱 우위에 있다고 생각하는 사회적 인식이 있는 이러한 상황은 결과적으로 보면 프랑스의 언어 동화 정책이 성공했다는 하나의 방증으로 보인다. 고대부터 꾸준히 외세의 침략을 받으며 지배당하고 그에 적응하는 튀니지인들의 특징으로 볼 수도 있겠지만, 프랑스의 정책, 프랑스어 학교를 설립하고 특혜를 주는 등 프랑스의 표면적인 식민 지배 명분이었던 고급화된 프랑스의 문화를 튀니지에 전파한다는 문화적 정책들은 성공적이었다. 이러한 프랑스의 정책은 일련의 알고리즘에 따라 실행되었는데 프랑스어 학교를 통한 프랑스어 사용 엘리트 양성 -> 프랑스어 중심의 언어 수립 및 시행 -> 프랑스어 학습의 필요성과 요구 자극 -> 프랑스어 학습 -> 프랑스어 확산 체계를 따랐다. 정책이 성공적으로 시행되어 튀니지 국민들은 프랑스에 대해 우호적인 생각을 갖고 있었고 튀니지 독립을 외쳤던 인물들 역시 이미 프랑스식 교육을 받고 프랑스의 언어와 문화에 심취해있는 친프랑스계 인사들이었다. 이들은 표면적으로 튀니지의 자주 독립과 튀니지 정체성을 주장했지만 한편으로는 튀니지가 발전하기 위해서는 프랑스의 도움이 절대적으로 필요하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었다. 이런 생각은 튀니지가 프랑코포니에 참여한 결정적인 계기가 되었을 수도 있다.
[프랑스어 확산 알고리즘]
프랑스의 동화 정책이 성공적이었다는 사실과 튀니지가 공용어 통합을 위한 노력이 부족했다고 볼 수도 있다. 현재도 공식언어로 아랍어를 공시하고 있지만 실제적으로 길거리의 상인들이나 관공소에 가서 표준 아랍어를 사용하면 난색을 표하는 경우도 많다. 대화를 하다가 논리정연하게 말을 하려고 하면 표준 아랍어를 사용하다 프랑스어를 사용하는 경우도 있다. 이는 아랍어가 사회적으로 통합되지 못한 부분과 프랑스어가 아랍어보다 우위에 있다는 인식속에서 비롯된 것이다. 튀니지 당국이 독립 이후 아랍어화 정책을 진행했지만 프랑스어학교에 혜택을 주고 프랑스어를 사용하는 튀니지 엘리트를 육성했던 프랑스 식민 지배 정책보다는 효과가 없었다. 아랍어화를 진행하면서 튀니지의 아랍어를 다시 되살리기 위한 운동보다도 사람들의 인식속에는 잠재적으로 프랑스에 우호적이었고 프랑스가 더 우위에 있다는 생각을 가졌기 때문에 자신들의 공용어를 지키기 위한 노력을 많이 쏟지 않았다. 제도적으로도 신 분야에서 사용되는 프랑스어를 비롯한 외래어들을 대체할 용어 교체를 위한 기구 설립도 미비했다. 결정적으로 아랍어화를 추진한 프랑스어를 습득한 엘리트층은 순수하게 아랍어의 회복과 부흥을 목표로 하기 보다는 자신들의 권력 유지와 정치적 이익을 목표로 했기 때문에 효율적으로 진행될 리 만무했다. 튀니지의 정책 결정자의 눈치를 보며 추진했고 아랍어화를 진행하는 진지한 고민을 발견하기 어렵다.
글로벌화된 현대 사회에서는 나라간의 많은 교류로 언어의 접촉이 불가피하고 긍정적인 측면을 가지지만 민족 본래의 언어적 정체성을 상실한다면 이는 심각하게 고민해 봐야할 부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