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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외

튀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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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서 론

 

언어는 한 나라에 있어서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 지난 튀니지 발표를 준비하며 튀니지는 역사적으로 많은 열강들의 많은 침략을 받았다는 점으로 보아 한국과 공통점이 많다고 생각했다. 일제 강점기 일본은 식민 지배를 하며 한국어를 사용하지 못하도록 하고 일본어 사용을 하게 하는 등 언어 말살정책을 펼쳤던 사례를 보면 프랑코포니(프랑스어권 나라)가 단순히 프랑스어만 사용하는 것이 아니라 문화적으로도 많은 의미를 가질 것이라 생각한다. 한국에 반해 튀니지는 독립을 이룬 후에도 어떻게 프랑스어가 프랑스화 된 튀니지 지배 계층의 언어로서 확고한 언어적, 사회적 영향력을 유지할 수 있었을까? 이는 국제 공용어로서 영어의 위상과 프랑스어의 국제적 영향력만으로는 충분한 설명이 되지 못한다.

 

1.1 역사적 배경

 

튀니지는 AD7세기 이후 이슬람화 된 이후 이슬람 국가로서의 정체성을 현재까지 유지하고 있으며, 전체 국민의 98%가 무슬림(2011년 기준)이다. 근대 이후 알제리, 모로코와 같이 프랑스의 식민 지배를 받았으며 1956년 독립 이후 아랍어화 정책을 꾸준히 실행해왔다. 19917월에는 교육제도에 관한 법률을 새로 제정하여 교육 전 과정에 대한 무상교육을 실시하고 있으며 아프리카 대륙 국가 중에서는 문맹률(25.7%, 2011년 기준)도 매우 낮은 편이다.

 

이러한 역사적 배경을 갖고 있는 튀니지는 언어적으로 공용어인 아랍어에 식민 지배 국가의 언어였던 프랑스어가 수용융합되어 각자의 기능적 역할을 수행하고 있는 다소 혼란한 사회적 특징을 보이고 있다. 이러한 특징의 원인은 프랑스가 식민 지배라는 커다란 역할을 했기 때문에, 식민 지배 기간 동안 프랑스가 실시한 언어 정책과 독립 이후 튀니지가 실시한 언어 정책 실태를 파악하면 알 수 있을 것이다.

 

따라서 현재의 복잡한 튀니지 언어 상황은 1881년 이후 프랑스 식민 정부의 언어 정책에 기인하는 바가 크다는 판단 하에 식민지 시대 프랑스 정부가 실시한 언어 정책을 살펴볼 것이다. 또한 1956년 독립 이후 튀니지 정부가 실시한 아랍어화를 중심으로 한 언어 정책의 배경과 추이에 대한 분석은 현재의 튀니지 언어 상황에 대한 이해에 도움이 될 것이다.

 

일반 대중들의 언어생활에 직접적인 영향을 끼치는 언론의 언어 사용의 변화와 현재 튀니지 사회에서 사용하는 언어 사용의 변화에 대한 인식은 외래어를 수용한 튀니지의 언어 상황을 이해하는데 매우 유용하리라 생각한다.

 

 

 

2. 본 론

 

2.1. 튀니지의 사회언어학적 환경

 

지중해 남부, 북부 아프리카의 중시에 위치해 있는 튀니지는 비옥한 토지와 지중해 무역의 허브 역할을 할 수 있어 고대부터 많은 이민족의 침략과 피지배의 역사를 갖고 있다. 복잡한 튀니지의 역사적 변천은 튀니지의 국가정체성 형성은 물론 튀니지에서 사용되는 언어의 변화에도 많은 영향을 끼쳤다. 튀니지의 원주민인 아마지그인들이 사용하는 타마지그어, 페니키아 인들이 사용했던 푸닉어, 로마가 지배한 시기에는 라틴어를 거쳐 왔는데 로마가 지배했던 시기에는 타마지그어-푸닉어-라틴어가 동시에 사용되는 다중언어현상이 나타났다.

로마를 축출한 이후에는 반달족의 언어인 크리스어가 사용되었다. 이후 아랍이슬람 정복군은 튀니지를 정복하고 이 때 현재까지 사용하는 아랍어를 정복군이 전파해 튀니지를 아랍, 이슬람 국가의 일원으로 남게했다. 1,000년간 지속된 아랍, 무슬림의 지배 기간 동안 아랍어는 확고한 공용어가 되었고 현재까지도 튀니지의 명실상부한 공용어의 위치를 차지하고 있다. 남부 지중해의 요충지에 위치한 튀니지는 프랑스와 이탈리아의 무역상과의 교역이 활발해, 상업 교역을 위한 피진어가 발달하기도 했다. 이 피진어는 상업 구어체 언어로서 구어체뿐만 아니라 상업 계약서와 외교문서에도 사용될 정도로 발달했다.

 

튀니지에서 프랑스어는 프랑스가 튀니지의 군사, 재정과 외교권을 확보한 1881년 이후 영향력이 확대되었다. 프랑스가 튀니지를 점령하는 기간 동안 프랑스 정부는 다른 북부 아프리카 국가에서처럼 튀니지에 세운 프랑스 학교를 통해 프랑스 문화와 언어를 집중적으로 보급, 확산시켰고, 교육과 언론 및 행정을 장악했다. 프랑스 점령 기간 동안 프랑스어 중심의 교육이 이루어졌고, 아랍어에 타마지그어와 다양한 외국어가 혼합된 튀니지 구어체 아랍어의 사용이 확산되어 아랍어의 표준어라 할 수 있는 고전 아랍어는 이슬람 종교 학교에서만 제한적으로 사용되었다.

 

프랑스가 튀니지를 점령하는 기간 동안 프랑스어는 튀니지 상류 계층의 언어, 과학과 기술의 언어, 현대 언어, 교양어등으로 인식되어 사용이 권장되었고, 프랑스 계열 학교에서 교육받은 튀니지인들은 독립 이후에도 사회 상류층과 엘리트 계층을 형성하여 튀니지의 국가 발전을 주도하였다. 그 결과 프랑스어는 독립 이후에도 이미 프랑스화된 튀니지 지도 계층의 언어로서

여전히 확고한 언어적, 사회적 영향력을 유지할 수 있었다. 특히, 이들은 언어 정책을 자신들의 집권과 권력 연장을 위한 정략적 수단으로 활용함으로써, 독립 이후에도 아랍어의 부흥과 발전은 한계를 지닐 수 밖에 없었다. 1956년 독립 이후에 튀니지 역시 다른 신생 아랍 독립 국가들처럼 국가 발전 방향에 대해 아랍주의자와 서구주의자 간의 갈등이 첨예하게 대립했고,

이와 관련하여 언어 문제도 아랍어와 프랑스어간의 줄다리기가 계속되었다.

 

독립 이후 아랍 민족주의로 무장한 민족주의자들은 아랍어를 부흥시키기 위해 아랍어화 실현을 위한 부단한 노력을 하였지만, 튀니지의 근대화와 경제 발전을 위해서는 서구 문화와 기술을 과감하게 수용해야 한다는 진보주의자들의 요구 역시 강력하게 대두되었다. 그 결과 아랍어와 함께 서구 과학 문명의 언어를 대변하는 프랑스어가 독립 튀니지에서도 굳건한 기반을 구축할 수 있었고 프랑스 식민 정부의 교육을 받은 튀니지 관료들에 의해 프랑스어는 오히려 아랍어보다 우위의 언어로 인식되게 되었다.

 

최근에는 국제어로서 영어의 역할이 강조되어 프랑스어와 영어간의 경쟁도 가열되고 있어 튀니지는 이슬람 국가로서의 국가 정체성을 가지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언어적으로는 다중언어사회의 특징을 보이는 등 매우 복잡한 양상을 띠고 있다.

2.2. 튀니지의 외국어 수용과 언어 정책

튀니지는 고대에서부터 현대에 이르기까지 많은 외부 세력의 많은 침탈과 지배를 경험했고, 그 결과 다양한 외국어가 병존되어 있는 사회다. 물론 AD7세기 이후 아랍, 이슬람 국가로서의 정체성을 유지하고 있고 튀니지 헌법에서도 아랍어를 공용어로 명시하고 있지만 사회에서는 프랑스어, 영어, 타마지그어 등 다양한 외국어들이 튀니지에 공존하고 있는 실정이다. 특히, 근대에 프랑스의 식민 지배는 1,500여년 간 오랜 이슬람 사회의 전통과 문화적 특징을 유지하고 있던 튀니지 사회의 근간을 흔드는 커다란 충격이었으며, 그 영향력은 독립 이후에도 지속되고 있다.

 

프랑스의 식민지 문화 정책의 핵심은 프랑스어 확산이다. 프랑스 정부는 식민지의 언어를 프랑스어로 교체함으로써 프랑스 문화의 이식과 식민지 지배를 용이화, 영구화하기 쉬워진다고 믿었다. 이는 프랑스의 식민지 관리의 기본 정책인 동화주의에 기인하고 있다. 프랑스 지배 이전에 튀니지의 대부분의 학교는 종교학교였고, 교육 과정은 코란의 암송을 중심으로 한 전통적인 이슬람식 교육 방법이었다. 9-11세기에는 이슬람 학자들이 아랍어와 이슬람학뿐만 아니라 철학, 수학, 의학, 자연과학등의 분야에서 걸출한 업적을 만들어 냈고, 이들에 의해 지중해를 중심으로 한 서양문명이 발달했다.

 

1574년부터 튀니지는 오스만 투르크의 지배를 받았고 오스만 투르크의 베이들에 의해 서구 문화의 튀니지 수입은 이미 시작되고 있었다. 오스만 투르크의 베이였던 무하마드 사디크에 의해 1875년 설립된 Sadiqi 대학은 튀니지 교육의 현대화를 목표로 세워졌다. 프랑스의 식민 지배 이후 이 대학교에서는 프랑스어로 무장되고 서양 문화에 세속화된 튀니지 엘리트들을 양산해 냈다. Sadiqi 대학 출신들은 독립 이후에도 튀니지의 교육과 언어 정책을 주도하는 세력으로 활약했고, 철저하게 프랑스화된 인물들이었다. 이들이 독립 튀니지의 국가 건설과 국가 정체성 확립 과정에 참여함으로써 이들이 만든 정책은 기본적으로 프랑스적 성격을 가질 수 밖에 없었다. 이에 더불어 초등 교육기관인 쿠탑 출신의 학생들 중 가장 우수한 학생들이 진학한 Zaytuna 대학은 전통적인 이슬람 교육기관은 최고 수준의 대학으로 영예를 누렸지만 세속적인 교육과 프랑스의 많은 지원과 함께 발전한 Sadiqi 대학에게 최고 수준 대학의 명예를 넘겨줄 수 밖에 없었다.

 

프랑스어학교 이외에 유럽의 언어를 교육하는 많은 학교들도 생겨났다. 이러한 교육 환경은 프랑스어가 튀니지에 정착하는데 보다 용이한 환경을 제공해 주었다. 프랑스어 학교의 교육은 과거에 코란(지식의 근본은 코란이다)을 중심으로 한 튀니지의 전통적인 교육방식을 실용적인 목표를 가진 보다 현대화된 유럽 교육방식으로 바꿨고 튀니지의 교육 방식을 크게 위축시켰다. 이후 1883년에 프랑스 식민 정부는 공공교육위원회를 설립했는데 이 기관은 튀니지의 모든 교육 기관을 관리 감독하고 교육 제도를 만들어 갔다. 이 위원회의 기본 방침은 현대화, 프랑스어와 문화의 확산 및 튀니지 국민의 동화였다. 여성의 인권을 중요시하는 튀니지 답게 École Rue du Pacha이라는 여성을 위한 학교도 1900년에 세워졌다.

 

튀니지의 프랑스어 학교에서는 프랑스어와 아랍어를 혼용해서 세속 교육을 주도했다. 프랑스의 교과 과정을 적용했고, 이 학교의 제 1언어는 프랑스어였고 제 2언어가 아랍어였다. 프랑스 학교는 취업 기회의 우선과 졸업하면 정부의 관료가 되는 유리한 고지를 차지할 수 있었던 덕분에 많은 인기를 끌었다. 이는 프랑스 식민 정부가 튀니지인들의 교육을 걱정하기 보다 튀니지를 관리할 친프 튀니지인들을 양성하기 위한 목적으로 설립했다. 일부 튀니지 엘리트들만 인문학을 교육받았고 대부분의 튀니지인들은 농업, 상업과 같은 저부가가치 직종에 대한 교육을 받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많은 튀니지인들은 프랑스어 학교를 들어가길 원했고 튀니지인들의 별다른 저항없이 많은 프랑스어 학교가 생겨 날 수 있었다. 이는 독립 이후에도 프랑스어가 튀니지에 영향을 끼치는 계기를 만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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